이글은 서울 광화문 새문안 교회 청년 1부 유재경 목사님이 2009년 2월에 쓴 글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논란들에 답하기 전에 십일조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십일조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과 감사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에서 잘 나타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십일조에 대한 첫 언급이기도 한 데, 창세기 14:20에서 아브라함은 북방 왕 연합군과의 전쟁을 마치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립니다.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드린 후 다른 전리품으로 부를 얻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창15장 1절에 하나님이 자신이 아브라함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은 자신이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하기 위해 십일조를 드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십일조가 하나님의 주인됨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말라기 3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말하면서 십일조와 봉헌물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십일조의 두 번째 의미는 공동체를 돌보고 세우는 돌봄입니다. 레위기에 십일조에 대한 본격적인 언급이 등장하는데 십일조는 두 가지의 기능을 가집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을 전업으로 하기에 소득이 없는 레위인들을 부양하기 위한 기능으로 사용되었고(민 18:21-24, 느 10:37), 또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민 26:12-14)
결국 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의미와 공동체를 돌보고 세우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십일조를 해야 물질적으로 복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의 주인임을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돌보고 세우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십일조의 두 가지 정신을 기억하면서 십일조와 관련한 논란으로 들어가봅시다. 먼저 십일조는 꼭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다루어봅시다.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약에서 구약의 율법은 다 폐하여진 것이므로 구약에서 드린 십일조는 안 지켜도 된다거나 십일조를 잘못 사용하는 교회재정의 폐해가 크므로 십일조를 하지 말아야한다거나, 서구교회가 안 하고 있기에 우리도 필요없다는 것에서 논리적 근거를 삼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마23:23의 예수님의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들의 소산물만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서 더해서 박하와 회향까지 십일조를 드렸음에도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저버린 그들의 십일조는 무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무용하니까 하지말라고 하지 하지 않으시고 이것(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행하고 저것(십일조)도 버리지 말라고 하심으로서 십일조를 유지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실제적으로도 십일조가 없으면 하나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하는 사역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두 번째 논란은 정확한 십일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출이자를 제외해야한다는 분도 있고 세금을 제외해야한다는 분도 있고 부채를 제외해야한다는 분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한 번 십일조한 용돈은 십일조하지 않아야한다는 분도 있고 해야 한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의 시작은 십일조의 정신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정리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상급이신 것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로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금액의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태도의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앞에서 투명할 수 있다면 믿음의 분량에 맞게 어떻게 십일조를 드려도 괜챦습니다.
청년들이 가정을 이루게 되면 십일조의 문제로 부부간에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의 분량이 달라서 십일조에 대한 태도가 틀린 것이 이유입니다. 그럴 경우는 십일조를 잠시 중단하기를 권합니다. 아내나 남편이 십일조를 이해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때까지 중단하고 그것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존중함으로 가정을 복음 안에 세우는 것이 우선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믿음이 약한 아내나 남편에게 내가 기다리고 있으며 이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계속하여 권면함으로서 십일조에 기쁨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십일조를 복받으려고 하나님 앞에 내놓는 복채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말라기 3장에서 하나님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자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사람들은 십일조만 하면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3장이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예수님이 마23장에서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과 동반되는 헌물을 말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 드리고 하나님이 복을 왕창 주시기를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주를 위해 기꺼이 10분의 9로 살아가고자 결단하고 열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는 영적성숙의 길을 가게 되며 하나님이 그가 포기한 10분의 1없이 하나님이 풍성히 살아가게 하시는 복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영성생활과 일치되지 않은 헌금생활은 의미없는 기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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